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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글

‘질풍노도의 시기’…청소년의 뇌는 어떻게 생겼나

[강기자의 과학카페]<61>청소년 뇌는 뒤죽박죽 상태

2012년 0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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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how do you thank someone
Who has taken you from crayons to perfume,
It isn’t easy but I’ll try

(크레용을 쥔 소녀에서 향수를 뿌리는 숙녀로 만들어주신
그분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도해 보겠어요)

불량 청소년들로 가득한 런던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 부임한 흑인 교사 마크 색커리(시드니 포이티어). 전직 통신 기사이지만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잠시 교사를 하기로 한 것. 거친 학생들의 조롱과 반항으로 고생하지만 결국 선생님의 진심과 열정을 알게 된 학생들은 하나 둘 마음을 연다. 졸업 댄스파티가 열리는 날 한 여학생(루루)이 선생님을 향해 애절한 노래를 부른다.

1967년 개봉한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To Sir With Love’. 통신 기사 자리가 생겨 학교를 떠나기로 했던 색커리가 합격통지서를 찢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TV에서 몇 차례 봤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뭉클한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스토리다. 그런데 요즘 이 영화 생각이 난다. 루루의 독특한 음색이 인상적인 노래도 듣고 싶다. 2012년 벽두부터 신문과 TV를 도배하고 있는 학생폭력 이야기는 승천하는 흑룡의 기상을 받은 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신년 벽두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30여 년 전 기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폭력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 같다. 특히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도해야 할 교사들이 손을 놓은 것 같아 더 씁쓸하다. 마크 색커리 같은 선생님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청소년 뇌는 뒤죽박죽 상태

얼마 전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뇌연구의 흐름과 변화'라는 제목으로 뇌과학 연구의 전반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중간에 청소년의 뇌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슬라이드가 몇 장 있었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청소년의 뇌를 이해해야 한다"며 “뇌의 발달은 감정을 다루는 부분이 이성을 다루는 부분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사이의 10여 년을 청소년기라고 한다. 이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같은 분석장비가 개발되면서 청소년기 뇌 발달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청소년 뇌 발달 연구로 가장 유명한 건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 1991년부터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다. 3살부터 25살에 이르는 피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2년마다 뇌를 MRI로 촬영해 그 변화를 분석하는 대형 연구과제로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아이가 자라 12살 정도가 되면 뇌의 부피 성장은 거의 완성된다. 그렇지만 뇌의 내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프로젝트가 밝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청소년의 뇌발달 속도가 부분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

연구자들은 뇌조직의 회백질(gray matter)와 백질(white matter) 양의 변화로 뇌발달을 추정했다. 즉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체액에 담겨있는 조직이고 백질은 신경 연결망(축색)이 미엘린이란 지방성 피막으로 둘러싸여 있는(수초화돼 있다고 부른다) 조직이다. 회백질은 수분이 높고 백질은 낮기 때문에 MRI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판단과 의사결정 처리영역 성숙 늦어

연구결과 청소년 뇌의 회백질은 나이가 듦에 따라 초기에는 두꺼워지다가 후기에는 얇아지는데 그 시기적 패턴이 부위별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10살 전후부터 회백질이 얇아진다. 반면 판단이나 의사결정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10대 후반에 가서야 회백질이 얇아지기 시작한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뇌피질의 회백질은 얇아지는데 그 시기가 부위별로 다르다. 감각이나 운동 같은 원초적 기능을 하는 부분은 일찌감치 회백질이 얇아지지만 판단이나 의사결정 같은 이성의 영역에서는 뒤늦게 변화가 나타난다. (제공 PNAS)
회백질이 얇아지는 건 신경세포 사이의 연접, 즉 시냅스에 가지치기(synaptic pruning)가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유력한 설명이다. 보통 우리가 경험을 쌓을수록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가 하나 둘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신경세포가 생길 때부터 수많은 시냅스가 무작위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뇌의 회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분의 불필요한 시냅스를 잘라내야 한다. 이런 시냅스 가지치기, 즉 회백질의 성숙 과정이 청소년기에 활발하게 일어나는데 그 시기가 부위별로 다르다는 것.

한편 청소년기 뇌의 발달 과정은 여자가 남자보다 전반적으로 1~2년 빨리 일어난다. 같은 또래일 경우 여자 청소년이 좀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이유다.

백질에서 보이는 신경세포 사이 연결망의 수초형성은 신경신호가 더 빨리 순조롭게 전달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신경 세포 사이에 고속도로를 까는 셈이다. 따라서 청소년은 감각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능력은 성인과 차이가 없지만 주의를 집중하거나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떨어진다.

이 결과 청소년들은 몸은 커졌지만 정신은 아직 통제력이 약해 정서가 불안하고 뜻밖의 사고를 치기도 한다. 청소년기 사망률이 몸이 연약한 어린아이 때보다 오히려 두세 배 더 높은 이유다.

흥미롭게도 뇌에서 수초형성이 최대가 되는 시점은 50세 부근이라고 한다. 뇌는 사실상 일생동안 성숙하는 셈이다. 많은 조직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의 나이가 ‘지혜’가 가장 풍부한 50살 전후에 몰려 있는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지난 20여 년 사이에 청소년의 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상당히 밝혀졌음에도 청소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온라인게임, 휴대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변화다. 최근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서는 이런 환경이 청소년의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돼 청소년의 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 하더라도 청소년 문제는 별로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암이나 당뇨병, 비만에 대한 지식에 놀라운 진전이 있었지만 이들 질병에 걸리는 사람의 수는 여전히 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적어도 사람 문제에서는 행동 없는 지식은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보듯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교육학 지식만 풍부하고 학생들에겐 무관심한 교사들이 아니라 교육학 이론이나 청소년 뇌발달에 대한 지식은 없더라도 진심으로 학생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다가가는 사람들 아닐까.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출처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20109200002270844&classcode=01